다산문선을 통해 본 뇌졸중 이야기

  • 관리자 (webmmagnus)
  • 2021-04-28 20:23:00
  • hit4
  • vote0
  • 114.205.227.107

한 대선후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정약용을 꼽았을 정도로 다산 정약용은 모든 지식인의 로망이라 하겠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28세에 대과에 2등으로 합격해 벼슬길에 올라 부승지와 형조참의 등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승승장구하던 중 그의 최대 후견인인 정조가 세상을 뜨면서 척박한 유배생활이 시작되었다. <다산문선>은 다산이 18년간 유배생활 중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나 단문을 후대에 엮은 책으로 목민심서나 경세유표 등 당대 저서에서 볼 수 없었던 다산의 사적이고 인간적인 면을 볼 수 있다. 다산문선에서 정약용이 뇌졸중을 앓았다는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나의 건강은 약을 복용한 뒤로는 대체적으로 좋아져서 가슴이 답답하고 몸을 곧게 펼 수 없는 증세는 완쾌되었으나 왼팔다리만은 아직도 예전과 같지 않다. 그러나 이것도 차차 나아질 것이다. 다만 이달에는 공적으로 사적으로 애통한 일을 당하여 밤낮으로 통곡하고 있으니 이 어떤 사람의 신세가 이러한 지 모르겠다” - 1801년 두아들에게 보내는 글 중.
 
 
“나는 중풍으로 팔다리를 쓰지 못하고 있으니 이치로 보아 오래 살 것 같지 않다. 내가 이곳에서 죽는다면 이곳에 묻어두고 나라에서 죄명을 씻어 줄 때까지 기다렸다가 반장하도록 해라” - 1810년 두아들에게 보내는 글 중.
 
 
다산에게 뇌졸중은 유배직후인 40세 전후에 발병한 것으로 보이므로 이는 요즘 범주로 보면 청장년기 뇌졸중(young adult stroke)에 속한다. 청장년기뇌졸중은 혈관기형 등에 의한 출혈의 비중인 노년기의 것보다 높지만 스트레스에 의해 뇌출혈과 뇌경색 또한 발생할 수 있다. 다산은 ‘밤낮으로 통곡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발병 당시 극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었을 것으로 보이므로 스트레스로 인한 뇌경색이나 뇌출혈의 가능성도 충분히 있을 수 있겠다. 정약용은 정계에 있을 때부터 굉장한 완벽주의자며 하드워커였을 것으로 보여지며, 정조 사망 후에는 당쟁이 불붙으면서 천주교도로 몰려 형을 비롯한 주변인물들이 참화 당하고 정약용은 겨우 목숨을 부지해 강진으로 유배되었으니 그 스트레스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을 것이다. 다산은 천성적으로 성품이 유연한 스타일은 아니어서 스트레스 매니지가 쉽지 않은데다가 너무나 엄청난 상황변화가 정약용에게 뇌졸중을 유발시키 충분하여 보인다. 또한 다산이 고혈압이 있었다면 남도 지방의 짠음식이 고혈압을 더욱 악화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다산 스스로도 남도의 강한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고 힘들어한 기록이 있다. 기타 뇌졸중의 위험인자인 과거병력, 당뇨, 콜레스테롤, 음주, 흡연에 대한 기록은 확인하지 못했다. 다산의 음주 습관은 주량은 굉장하지만 절주를 강조해왔으므로 크게 영향을 주었을 것 같지 않다.
 
 
다산은 40세 전후에 뇌졸중을 앓고 56세까지 유배생활을 하였으며 1836년 76세로 사망하였으므로 천수를 다하였다. 특별히 뇌졸중이 재발한 기록이 없으므로 다산은 뇌졸중의 2차 예방에 성공한 것으로 보여진다. 다산은 거의 모든 저서를 유배지에서 집필하였다고 하니 이 모든 작업이 좌측 편마비 상태에서 이루어졌으므로 직업재활에도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떻게 다산은 성공적으로 재발을 방지하고 재활에 성공하였을까?
 
 
첫째, 다산은 자신의 마음을 잘 추스리고 목표를 재조정하였다. 그는 비록 정치는 못하지만 저술을 통해 후대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목표를 재설정하였으며 재활치료도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하였으며 이는 작업치료의 일상생활동작훈련에 속한다. 또한, 기록에 의하면 헝겊으로 붓을 손에 묶고 책을 썼던 적도 있었으니 이는 뇌신경촉진방법(Neurofaciltation Techniques)으로도 볼 수 있겠다.
 
 
둘째, 다산은 하루 종일 책만 보지 않았고 차나무를 재배하고 대나무를 옮겨 심는 등 끊임없이 몸을 움직였다. 그 당시는 운동 개념은 없었지만 노동을 즐기는 사이 신체운동이 활발히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으로 본다.
 
 
세째, 다산은 중풍을 이기기 위해 녹차를 마셨다고 하는데, 녹차의 이뇨작용으로 혈압을 다소 낮추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다도를 통한 심신이완요법이 혈압이나 심신 조절 및 경직과 통증 조절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본다.
 
 
다산은 귀양살이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울분을 참기 어려울 정도로 심한 스트레스에 의해 뇌졸중이 발생하였지만 차츰 평정심을 회복하고 귀양살이를 학문하라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목표재설정에 성공하였고 굳건한 재활의지로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올바른 습관을 유지하여 뇌졸중 이후 무려 300여권의 책을 서술하였다. 다산이야 말로 우리가 알고 있는 최고의 재활 성공사례라 할 수 있다.

 

게시글 공유 URL복사
댓글[0]

열기 닫기